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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平康) 채(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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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조 : 채송년[蔡松年]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평강(平康)은 강원도 북서쪽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부양현 또는 사내현이었는데 통일신라 경덕왕 때 광평으로 고쳐서 부평군에 속하게 하였으며 고려 1018년에 평강으로
개칭하고 동주(東州)에 예속시켰다.

평강채씨(平康蔡氏)의 시조 채송년(蔡松年)은 1230년 최향의 난이 일어나자,
병마사로 이를 평정하여 대장군에 올랐고, 그후 금자광록대부로 태사, ·문하시랑 평장사,
상호군 등을 거쳐 태자 태사에 이르렀다.
그의 맏아들 정(楨)이 중서시랑 평장사로 평강군에 봉해졌고,
둘째 자화(子華)는 문하시랑 평장사, 상장군, 판이부사 등을 지냈으므로,
후손들은 본관을 평강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평강채씨는 특히 조선조에서 훌륭한 인물을 많이 배출시켜 명문으로서의 지위를 굳혔는데,
그중 빼어난 인물은 정승 종린(宗璘)의 7대손 세영(世英)을 들 수 있다
세영(世英)은 중종과 명종대에 걸쳐 호조판서, 좌참찬을 역임한 명신으로 일찍이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 등 사림(士林)들이 화를 입게 되자, 대궐에 들어가
승지 김근사한테서 사필(史筆)을 빼앗아 들고 임금께 말하기를
"신은 간신이 아니고 제 소임 밖의 일을 말씀 드리는 것은 죄가 되오나 이 사람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러는 것인지 죄명을 들고자 하나이다."
하고 말하니 좌우에 있던 관원(官員)들이 모두 겁을 내어 목을 움츠렀다고 한다.

특히 그는 벼슬에 있는 동안 기묘, 을사의 사화(士禍)로 많은 선비들이 화를 입었으나
홀로 남아 창안백발(昌顔白髮)이 조정에서 빛났으며, 평소 장중하여 아무도 그를 범하지
못했다고 하며 학문이 깊었고 천문,의약에는 물론 중국어에까지 통달하여 크게 명성을 날렸다.

그외 철종때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동건(東健)이 고종때 개성부 안무사를 거쳐
수군통제사와 형조 판서에 올랐으며, 동식(東軾)의 아들 광묵(光默)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의병을 일으켜 홍성에서 일본군과 격전하다가 아들 규대(奎大)와 함께 전사하였다.

영찬(永贊)은 최익현의 의병에 가담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으며, 경남 하동군 화개동에서
광양 의병장 백낙구(白樂九)와 합세하여 순천을 공격하다가 체포되어 고금도에 유배,
이듬해 다시 항일전을 전개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여 평강채씨 가문을 유명하게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평강채씨(平康蔡氏)는 남한에 총 14,326가구, 59,953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집성촌

충북 진천군 덕산면 용몽리
전북 옥구군 성산면 도암리, 고봉리

함남 홍원군 삼호면 중평리
전북 옥구군 임피면 영창리

함북 경원군 용덕면 용향동
전북 부안군 주산면 동정리

함북 경원군 경원면 송천동
전남 보성군 복내면 용동리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29번길 9 (심곡2동) 봉호B/D 401호| 관장 : 김 원 준
전화: 032-654-4788, 02-2699-2693  | Mobile : 010-4000-6357  | 팩스: 032-654-4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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