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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通川) 최(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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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通川)

통천(通川)은 강원도(江原道)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원래 고구려의 휴양군(休壤郡) 또는 금뇌군(金惱郡)이었다. 통일신라 경덕왕(景德王) 때 금양군(金壤郡)이 되었고, 고려초에 현령(縣令)을 두었으며, 1285년(충렬왕11)에 통주방어사(通州防御使)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13)에 통천(通川)이라고 개칭하여 통천군(通川郡)이 되었으나 1762년(영조38)에 현(縣)으로 하였으며, 1771년(영조47)에 다시 군(郡)이 되었다.

통천 최씨(通川崔氏)의 시조는 고려 때 정의대부(正義大夫)로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 중서좌상시(中書左常侍), 감찰어사(監察御使) 등을 역임한 최경현(崔景賢)이다. 그의 두 아들 사순(事舜)과 우순(遇舜)의 후대에서 증손 유(侑)가 문하평리(門下平理)를 지냈으며, 녹(祿)은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 호군(護軍)으로 고우(高郵)의 싸움에서 전공을 세워 통천 최씨(通川崔氏)의 가문을 빛낸 대표적 인물이다. 운해는 아버지의 전공(戰功)으로 공민왕(恭愍王) 때 충용위 산원(忠勇衛散員)에 기용되었고 조전병마사(助戰兵馬使)에 올라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수차에 걸쳐 왜구를 격퇴한 뛰어난 장군이었다. 그는 조선(朝鮮)이 개국하자,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에 책록되고 (門下評理)로 양광도 절제사(楊廣道節制使)가 되어 왜구를 격파하였고 1396년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로서 경상도 병마도절제사(慶尙道兵馬都節制使)가 되어 영해에서 왜구를 격퇴하여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으며, 이성도 절제사(泥城道節制使)를 거쳐 참판승추부사(參判承樞府事)로서 사직했다. 운해의 아들 윤덕(潤德)은 어려서부터 활을 잘 쏘아 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다녔고 싸움터에 나가 전공(戰功)을 세워 부사직(副司直)이 되었다. 1433년(세종15) 파저강(婆猪江)의 야인(野人) 이만주(李萬住)가 국경을 침범하여 백성을 괴롭히므로 왕명을 받들어 토벌하고 돌아오니, 세종이 매우 기뻐하며 친히 영접하여 노고를 위로한 후 우의정(右議政)에 특진시켰다. 그는 장군(將軍)으로 30여 년간 변경에서 위력을 떨쳐 벼슬이 좌의정(左議政)에까지 올랐으며 궤장( 杖)을 하사받아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한편 녹(祿)의 후손이며 자양(自陽)의 아들인 입( )은 조선(朝鮮)중기의 학자로서 문장에 능하고 학문이 뛰어났으며, 임진왜란 때 승문제조(承文提調)로 외교문서 작성의 제1인자였고, 여러차례 명(明)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문명(文名)을 날렸다. 특히 시(詩)와 글씨가 뛰어나 그의 문장과 차천로(車天輅)의 시(詩), 한호(韓濩)의 글씨는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불리웠다. 그 외 인물로는 윤덕(潤德)의 아들 숙손(淑孫)이 조선 때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지냈고, 숙손의 동생 광손(廣孫)은 군수(郡守)를, 윤덕의 동생 윤옥(潤玉)은 수찬관(修撰官)을 역임하여 명문(名門)인 통천 최씨(通川崔氏) 가문을 유명하게 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통천최씨(通川崔氏)는 남한에 총1,910가구, 7,75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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